ELLYCHO

조나단 굿맨

JOHNATHAN GODDMAN | KWANG SUK JO | PARK YOUNG T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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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리: 기억의 표면을 다스리기


조애리는 20 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태국의 푸켓을 사랑해왔다. 그녀는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가져와 디지털 사진 위에 물감을 덧대었다. 우리는 작품을 보기도 전에 그녀가 태국에서 보낸 시간과 관찰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분투한 관념적 용기를 고찰해 볼 수 있다. 그녀는 디지털 프린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림으로서 그녀가 선택한 지역의 장대한 자연 풍경을 흑백으로 묘사하는 사진 위에 첨가하여 그것을 재해석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림을 그린 이미지는 실제 사진에서 보여주고 있는 자연을 손상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향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연의 경험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다른 대부분의 훌륭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좀 더 구체적일수록 그 효과는 더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그녀가 더하는 녹색, 주황색 및 핑크색의 회화적 확장은 작업에서 발견하거나 그것에 의해 제안된 또 다른 자연의 단면을 나타낸다. 따라서 나뭇잎, 회오리바람, 꽃 그리고 물고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을 재현하는 그녀의 작품 통해 우리는 그녀의 하이브리드 회화/사진 작품이 담고 있는 눈을 뗄 수 없는 지능적인 나뭇잎과 물고기의 형태를 감상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녀의 프로젝트가 어떠한 근원에서 출발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경험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를 수집하여 회화 작업으로 말 그대로 수를 놓는다.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장소에 관하여 고찰하는 것을 통해 기억은 생생한 경험으로 남는다. 비록 우리가 그녀의 전시회에 포함된 산을 촬영한 사진 작품보다는 덜 황량하게, 주위를 환기시키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숲의 사진의 세밀한 이미지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녀가 묘사하는 숲을 상상해야만 하며 이것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과는 다르다. 끝이 없는 산과 숲! 이것이 그녀가 그것들을 기록하는 즐거움의 원천일 것이다. 기억을 통해 떠올리는 풍경은 그것의 미학적 생명을 예술을 통해 영구적으로 연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장식된 이미지들은 설명을 요구하는 동시에 분석을 피하며, 이성적인 탐구의 좀 더 별적인 이해보다는 직관적인 통찰을 선호한다. 그녀는 스스로 제작한 이미지로 사진의 영역을 덮음으로써 그녀가 마음에 담고 있는 이미지 안에서 작가의 소유가 아닌 존재를 주장한다. 거시적 측면에서 그녀의 회화/사진 작품들은 작가의 과거의 이야기에서 발생한 일련의 조심스러운 사건들을 재현하는 작업을 하는 서사적 작가가 주는 기억의 선물이다.

그녀의 작품을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작가가 인공과 실제라는 두 관념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omento 1 (2013)에서 나뭇잎 이상으로서의 나무는 작은 사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며, 밝은 녹색으로 칠한 잎들은 사진 속 숲의 흰색, 회색 및 검정색과 대조된다. 작품 제목은 영어 “moment (순간)”와 “memento (기념품)”를 혼합한 단어로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기를 바라는 순간에 대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려진 녹색 나뭇잎들이 사진으로 찍힌 숲의 나뭇잎들과 대비되지만, 규모적이고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Momento 2 (2013) 역시 자연과 인공의 파라다이스를 결합한 비유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녹색 잎들은 전반적으로 매우 각진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좀 더 어두운 요소들, 예를 들면 나무 둥치, 나뭇잎, 하는 그리고 관목은 왠지 신비스러운 밤의 느낌을 주며 그려진 잎들만큼이나 상상력을 구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상상은 반대되는 동시에 또한 서로 협력하여 그녀가 결코 숨기고자 하지 않는 인공성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최종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영상작업 Visual Kinematics: State of the Art (No. 13) (2012)는 2분 30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지속되는 작업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혼자 혹은 그룹으로 연못을 헤엄치는 물고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영상의 상부는 키가 큰 연못 풀로 되어있고 하부는 실제로는 볼 수 없는 빌딩들을 투영하는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이러한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연과 문화 - 좀 더 적절한 단어로는 건축 - 간의 상호작용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외견상으로는 목가적인 No. 13 은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자연을 인식하고 더불어 비록 돌출된 빌딩들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것의 도입이 고요한 연못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발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복합성과 현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작가의 양면성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주어진 영향과는 다르다. 마치 현재의 영상에서 작가는 이전만큼이나 자연을 신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물고기들이 모였다 흩어짐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상호작용이 목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기념하는 방식으로 계획된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찰나의 구원에 대한 짧은 소설인 No. 2는 관람객에게 비록 전체적인 인상은 유머러스하고 심지어 아이러니하지만 어느 정도의 위로를 강조하고 있다.

Visual Kinematics: A State of Mind (No. 10)에서는 영상 모니터의 넓이만큼 가로지르는 나무 무리가 있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불 때 영상에 포함된 사운드는 나무의 잎을 움직이는 바람의 이미지에 대한 오마쥬다. 이 작품은 시적인 이미지로 90 초 동안 움직이고 지속되며 잠시 동안이지만 바람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풍경과 감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간결한 이미지만큼이나 매우 감동적이다. 당신의 눈앞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풍경을 상상해 보아라! 작가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내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완벽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자연에 대한 고요한 이상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관람객을 압도한다기보다는 절제된 표현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딥티크 형식의 작품 A Place in My Heart (2013)은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왼쪽은 흑백으로 된 스위스 알프스의 이미지이고 오른쪽은 스위스 알프스의 암청색의 밤하늘로 산 위로는 달이 걸려있다. 첫 번째 사진은 경사가 급한 비탈로 전면에는 상록수 무리와 후면에는 눈 덮인 봉우리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 사진은 아름다운 밤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눈부신 자연의 모습은 실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극사실적이며 동시에 불가해할 정도로 심원한 두 개의 풍경은 사람들보다는 하늘과 더 많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높은 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복잡한 도시에 살고 있는 예술계에 이러한 이미지들은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 순수에 가까운 자연일 것이다. 두 이미지의 초현실적 아름다움은 매우 충격적이고 그렇게 매우 아름답고 비인간적인 곳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떨림을 준다. 우리는 지구의 끝으로 여행을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아름다움을 조애리의 사진과 영상 작업을 통해 대신 경험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 안에서 자연은 우리 미국인들이 허드슨 리버파 Hudson River School 의 그림이나 모더니스트 안셀 애덤스 Ansel Adams 의 서부 사진에 표하는 존경을 받고 있다. 자연을 역사적 관점으로 대하는 편견은 그것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다는 점에서 결코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특히 그러한 장르가 감동적이라고 여기는 관람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조애리의 작품세계는 현대 고전 음악에서 뉴 로맨티시즘 New Romanticism 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감정과 개념, 과거와 현재를 혼합한다. 또한 어떠한 아름다움의 근원이 의심되는 순간을 의도적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기원부터 한 부분으로 작용하여 왔다. 그녀는 종종 인공적인 이미지를 퍼붓는 우리의 상상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자연의 의미 있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서구의 사진사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30- 40 년대의 고도의 행위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녀가 파생적이고 어떤 특정 양식을 차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그녀는 실행 가능한 자연, 겸허하고 우아하게 세상을 나타내는 것을 추구하는데 있어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언어를 찾아 나섰고 또 그것을 발견했다. 산업은 그 어떤 실제적인 방법으로도 그녀의 미학의 일부를 형성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산업적 혹은 문화적 영향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기록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지속할 것 같다. 이것은 매우 고된 작업이지만 또한 매우 형편없이 유지되고 있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빛을 버리는 것을 거부하고 확신의 위치를 향해 나아가는 그녀를 통해 계속해서 회상하고 추억하길 바란다.


조나단 굿맨 Jonathan Goodman